냉장고도 새 기능을 ‘내려받는’ 시대

냉장고와 세탁기는 한번 사면 10년 가까이 사용하는 물건이다. 휴대전화처럼 이삼 년마다 갈아치우는 물건이 아니다. 그러나 가전제품은 공장 문을 나서는 순간, 쓸 수 있는 기능까지 사실상 확정돼 왔다. 새 기능이 필요하면 답은 하나, 새 제품을 사는 것뿐이었다. 삼성전자가 2026년 9월 7일 내놓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는 이미 시작된 가전의 변화가 더욱 넓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미 팔려 나간 냉장고와 세탁기 일부에 새 운영체제와 AI 기능을 추가하겠다는 것이다.
최신 기능을 기존 제품에서도 쓴다
업데이트는 9월부터 차례차례 시작된다. 대상 제품에는 가전용 운영체제 타이젠 10.0이 들어간다. 올해 나온 제품에 적용된 서비스와 화면 구성을 지난 제품에서도 쓸 수 있게 열어주는 방식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화면과 카메라를 단 ‘패밀리허브’ 냉장고다. 2021년부터 2025년 사이에 나온 21.5인치·32인치 제품, 그리고 2025년형 일부 9인치 제품에 구글 제미나이를 활용한 새 ‘AI 비전’ 기능이 들어간다. 냉장고 속 카메라가 식품을 들여다보고, 지금 무엇이 들어 있는지 관리해 주는 기능이다.
삼성전자의 설명으로는 업데이트를 마친 냉장고는 예전보다 훨씬 많은 신선식품과 포장식품을 알아본다. 특정 상표가 붙은 제품과 지역마다 다른 식품까지 인식 범위에 넣는다. 화면에는 하루치 정보를 한눈에 정리해 보여주는 기능과 오늘 무엇을 먹을지 고르는 일을 돕는 기능도 새로 붙는다.
세탁기와 나누는 대화도 한결 매끄러워진다
2024년과 2025년에 나온 일부 비스포크 AI 세탁건조기·세탁기·건조기도 대상에 올랐다. 새 빅스비는 사람의 말을 좀 더 자연스럽게 알아듣도록 바뀐다. “세탁 언제 끝나?”라고 물으면 남은 시간을 문장으로 또박또박 일러주는 식이다.
7인치 화면을 단 일부 제품에는 ‘간편 모드’가 생긴다. 화면 구성을 단순하게 바꾸고, 자주 쓰는 정보와 조작 기능을 찾기 쉽게 앞으로 꺼내 보여준다. 기능이 늘수록 조작이 오히려 복잡해지는 문제를 줄이려는 것이다. 빼곡한 화면이 부담스러운 사용자에게는 이쪽이 오히려 더 의미 있는 변화일 수 있다.
가전의 수명은 이제 기계와 소프트웨어가 함께 정한다
이번 발표에서 정작 눈여겨볼 것은 AI 기능 하나하나가 아니라 가전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다. 냉장고와 세탁기가 인터넷에 연결되고 화면과 운영체제를 갖추면서, 제품의 쓸모는 더 이상 ‘고장 나지 않는 기간’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소프트웨어를 얼마나 오래 고쳐 주고 새 기능을 공급하느냐, 그것도 이제 수명의 한 부분이다.
소비자에게는 반가운 변화다. 산 지 조금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새 기능에서 곧장 밀려나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제조사에도 이익이 있다. 기존 사용자가 자사 제품과 서비스를 계속 이용하도록 하고, 새 제품을 판매한 뒤에도 소비자와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
다만 업데이트가 가전의 물리적 성능까지 높여주는 것은 아니다. 카메라 없는 냉장고에 식품 인식 기능이 생길 리 없고, 화면 없는 세탁기에 새 화면 구성을 넣을 방법도 없다. AI가 식품을 잘못 알아보거나 음성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도 여전히 남는다.
이런 발상 자체가 삼성전자에서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LG전자는 2022년 1월 국내에 ‘UP가전’을 내놓고, 제품을 구입한 뒤에도 LG 씽큐 앱을 통해 새로운 기능을 추가해 왔다. 2022년 말까지 24종의 UP가전을 출시하고 120개가 넘는 업그레이드 내용을 배포했다. 따라서 삼성전자의 이번 발표는 새로운 방식을 처음 시작했다기보다, 기존 제품의 소프트웨어와 AI 기능을 개선하며 이미 진행 중인 업계 경쟁에 합류한 사례에 가깝다.
내 제품도 되는지는 따로 확인해야 한다
삼성전자의 모든 냉장고와 세탁기가 대상인 것은 아니다. 적용 시기와 기능은 제품 종류, 출시 연도, 판매 국가에 따라 달라진다. 일부 기능을 사용하려면 와이파이 연결과 해당 서비스에 맞는 삼성·구글·마이크로소프트 계정이 필요하며, 나라와 언어에 따라 제공 범위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니 “모든 옛 가전이 최신 AI 가전으로 거듭난다”라고 받아들이면 지나치다. 정확한 뜻은 필요한 장치를 이미 갖춘 일부 기존 제품에 새 기능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가전업계가 팔고 나면 끝이던 방식에서, 판매한 뒤에도 기능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삼성전자도 이번 업데이트를 통해 그 흐름을 더욱 넓혔다. 앞으로 가전을 고를 때는 전기효율과 용량뿐 아니라 소프트웨어를 언제까지 지원하는지도 함께 따져야 할 이유가 생긴 셈이다.
Q&A
Q. 모든 삼성 냉장고와 세탁기가 업데이트 대상인가요?
아닙니다. 화면과 카메라 등 필요한 장치를 갖춘 일부 제품만 해당합니다. 적용 여부와 시기는 제품 종류, 출시 연도와 판매 국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Q. 업데이트하면 새 가전과 성능이 같아지나요?
소프트웨어 기능과 화면 구성은 개선될 수 있지만 카메라, 화면, 센서 같은 물리적 장치의 성능까지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참고자료
삼성전자 글로벌 뉴스룸, Samsung Enhances Long-Term Value of Refrigerators and Laundry Appliances With AI-Focused Software Updates, 2026년 9월 7일.
LG그룹 보도자료, ‘ThinQ UP’ 앞세워 UP가전 글로벌 확대 출시, 2022년 1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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