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가 빨랫감부터 전기까지 따진다 — AI 세탁기는 무엇이 달라졌나

세탁기는 오랫동안 사용자가 선택한 과정에 따라 작동하는 기계였다. 빨랫감을 넣고 세제를 부은 뒤 버튼을 누르면 정해진 순서대로 물을 받고, 세탁하고, 헹구고, 탈수했다. 그런데 요즘 세탁기에는 냉장고와 에어컨처럼 ‘AI’라는 이름이 붙는다. 세탁물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 어떤 원단인지, 얼마나 오염됐는지를 감지해 물과 세제, 세탁시간까지 조절한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9월 2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IFA 2026에서 새로운 ‘비스포크 AI 세탁기’ 두 종류를 공개했다. 비스포크는 특정 기능의 이름이 아니라 삼성전자가 사용하는 맞춤형 가전제품 브랜드다. 새 제품 하나는 10㎏ 용량의 고효율 세탁기이고, 다른 하나는 제품 외부 크기를 키우지 않고 세탁통을 13㎏까지 넓힌 제품이다.
이번 발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숫자는 ‘A-70%’다. 이 숫자는 무엇을 뜻하며, AI는 실제로 세탁의 어느 부분을 맡는 것일까.
‘A-70%’는 전기요금 70% 절감이 아니다
유럽의 세탁기 에너지등급은 A부터 G까지 나뉘며 A가 가장 높은 등급이다. 신형 10㎏ 세탁기에 붙은 ‘A-70%’는 기존 세탁기보다 무조건 전기를 70% 적게 쓴다는 뜻이 아니다. 유럽에서 A등급을 받기 위한 최저 기준보다 에너지소비량이 약 70% 낮다는 의미다.
삼성전자 내부 시험에서 이 제품은 ‘에코 40~60’ 과정으로 100번 세탁할 때 15.3㎾h의 전력을 소비했다. 그러나 아직 개발단계의 전시 제품이며 유럽의 공식 제품등록을 위한 최종 시험도 남아 있다. 판매지역과 출시 시점 역시 확정되지 않았다. 따라서 발표된 수치를 우리나라 가정의 전기요금에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
유럽연합의 세탁기 에너지표시에는 100회 세탁에 드는 전력뿐 아니라 1회 물 사용량, 세탁시간, 탈수 성능과 소음도 함께 표시된다. 소비전력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세탁기의 전체 성능이 우수하다고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AI는 세탁물의 상태를 수치로 판단한다
AI 세탁기가 사람처럼 세탁물의 상태를 눈으로 살펴보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감지장치가 세탁물의 무게와 원단의 재질, 세탁수의 탁도 등을 측정한다. 세탁기는 이 측정값을 미리 입력된 자료와 비교해 물과 세제의 양, 세탁시간을 조절한다.
같은 해 7월 공개된 삼성 비스포크 AI 세탁기의 ‘AI 맞춤세탁+’ 기능은 면 의류·섬세 의류·수건·청바지·야외활동복 등 다섯 범주의 세탁물을 구분한다. 세탁 중에도 물의 탁도를 계속 측정한다. 오염물질이 많이 남아 있으면 세제량이나 세탁시간을 조절한다. 사용자가 빨랫감에 맞는 세탁과정을 매번 세세하게 선택해야 하는 수고를 줄여주는 기능이다.
다만 세탁물의 종류를 구분하는 기능은 2㎏ 이하의 세탁물에서 작동한다. 서로 다른 종류와 재질의 옷을 섞어 넣으면 판단의 정확도가 떨어질 수도 있다. AI가 모든 양과 종류의 세탁물을 정확하게 구분하는 단계는 아니라는 뜻이다.
전기를 줄인 주역이 AI만은 아니다
신형 제품의 높은 에너지효율을 AI만의 성과로 보기도 어렵다. 삼성전자는 모터의 효율, 열 관리 방식, 세탁과정의 설계를 함께 개선했다고 설명한다. 세탁통을 돌리는 과정에서 낭비되는 동력을 줄이고, 물을 데우는 온도를 낮추며, 세탁시간을 조정한 결과가 합쳐진 것이다.
‘스마트싱스’는 세탁기·냉장고·에어컨 같은 삼성 가전제품을 휴대전화와 연결해 작동상태와 전력 사용량을 확인하는 삼성전자의 관리 앱이다. 이 앱의 ‘AI 에너지 모드’를 사용하면 세탁기가 낮은 온도로 세탁하는 대신 세탁시간을 늘려 전력 사용량을 줄인다.
따라서 소비자는 절약되는 전력뿐 아니라 늘어나는 세탁시간도 함께 살펴야 한다. 빠른 세탁과 적은 전력 사용이라는 두 가지 효과를 언제나 동시에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AI 세탁기’라는 이름 안에는 원단 재질 구분, 오염도 측정, 세탁과정 추천, 전력 사용량 확인, 저온 세탁 제어 등 서로 다른 기능이 포함돼 있다. AI라는 이름이 붙은 기능이 몇 가지인지를 세기보다 내가 자주 사용하는 세탁과정에서 그 기능이 실제로 작동하는지를 확인하는 편이 중요하다.
AI 기능에는 작동 조건이 있다
제조사가 제시하는 AI 기능 가운데 일부는 지정된 세탁과정이나 일정량 이하의 세탁물에서만 작동한다. 사용자는 ‘AI가 알아서 세탁한다’는 광고문구만 볼 것이 아니라, 어떤 세탁과정에서 어떤 기능이 작동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국내 출시 제품은 유럽 전시 제품과 용량·기능·에너지등급이 달라질 수도 있다. 구매할 때는 국내 에너지소비효율표와 실제 소비전력, 물 사용량, 세탁시간을 따로 살펴야 한다.
AI 세탁기의 가치는 화려한 외관이나 기능의 이름에 있지 않다. 세제를 지나치게 사용하지 않고, 원단에 맞지 않는 세탁을 줄이며, 사용자가 복잡한 설정을 하지 않아도 일정한 세탁 결과를 얻도록 하는 데 있다. 절약한 전력과 물의 양을 사용자가 직접 확인할 수 있다면 더욱 유용하다.
결국 확인해야 할 질문은 간단하다. “이 기능이 우리 집에서 자주 세탁하는 빨랫감에 드는 물과 세제, 전력 사용량이 실제로 얼마나 줄어드는가.” 좋은 AI 가전은 이름이 아니라 사용 결과로 평가해야 한다.
Q&A
Q1. A-70%는 기존 세탁기보다 전기를 70% 적게 쓴다는 뜻인가요?
아닙니다. 유럽 에너지효율 A등급의 최저 기준보다 소비전력이 약 70% 낮다는 뜻입니다. 가정의 전기요금이 70% 줄어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Q2. AI 세탁기는 옷감을 어떻게 구분하나요?
감지장치로 빨랫감의 무게와 옷감의 특징, 물의 탁도 등을 측정합니다. 측정값을 바탕으로 물과 세제의 양, 세탁시간을 조절합니다.
korec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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