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반도체를 씻는 데도 물이 든다 — 사막과 지하수를 둘러싼 물 다툼

AI가 전기를 많이 먹는다는 이야기는 이제 익숙하다. 데이터센터의 컴퓨터를 돌리고 그 열을 식히는 데 막대한 전력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AI가 물까지 많이 쓴다는 사실은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물을 쓰는 곳은 데이터센터만이 아니다. AI에 들어가는 반도체를 찍어내는 공장에도 많은 물이 든다. 그것도 수돗물을 그대로 쓸 수 없다.
먼지 한 톨도 용납하지 못하는 공장
반도체는 둥근 원판인 웨이퍼 위에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가느다란 회로를 새겨 만든다. 이때 먼지나 불순물이 조금이라도 남으면 회로가 망가질 수 있다. 그래서 공정이 한 단계 끝날 때마다 웨이퍼를 ‘초순수’로 말끔히 씻어낸다. 수돗물 속 염분과 미네랄은 물론 미생물과 미세입자까지 거의 다 걷어낸 물이다.
이 초순수 1리터를 얻으려면 그보다 많은 수돗물이 들고, 걸러내는 데에도 전기와 시설이 따로 필요하다. 대형 반도체 공장 한 곳은 하루에 초순수를 약 1천만 갤런까지 쓸 수 있는데, 이만큼 만들려면 수돗물이 최대 1천600만 갤런 든다. 우리에게 익숙한 단위로 바꾸면 하루 약 6천만 리터다(더버지 보도).
물이 귀한 곳에 몰리는 물 먹는 공장
문제는 미국이 이런 공장을 집중적으로 짓는 곳이 하필 물이 귀한 지역이라는 점이다.
애리조나주가 대표적이다. TSMC와 인텔은 이곳에 AI 등에 쓰이는 첨단 반도체 공장을 늘려 짓고 있다. 애리조나는 사용하는 물의 3분의 1 이상을 콜로라도강에 의존하지만, 20년 넘게 이어진 가뭄과 과도한 취수로 강물이 크게 줄었다.
미국 연방정부는 2027년부터 애리조나가 콜로라도강에서 끌어 쓸 수 있는 물을 한 해에 최소 76만 에이커피트 줄이기로 했다. 평소 공급받던 양의 4분의 1이 넘는다. 그런 와중에도 TSMC는 피닉스에 반도체 공장을 최소 여섯 곳 세울 계획이며, 첫 공장 한 곳에서만 하루 약 475만 갤런의 물을 사용한다.
텍사스주 테일러시도 사정이 비슷하다. 삼성전자는 이곳에 최소 170억 달러를 들여 첨단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다. 장기적으로 공장을 가동하는 데에는 하루 약 1천500만 갤런의 공업용수가 필요할 것으로 알려졌다.
테일러시가 공급하는 물만으로는 필요한 양을 채울 수 없어, 용수 공급업체인 EPCOR가 인근 밀람카운티의 카리조-윌콕스 대수층에서 지하수를 끌어와 정수한 뒤 공장에 공급한다. 이 대수층에서는 텍사스의 대도시 샌안토니오도 물을 공급받고 있다. 오랫동안 이 지하수에 기대어 농사를 짓고 살아온 주민들 사이에서는 지나치게 많은 물을 퍼 올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EPCOR의 용수 공급계획).
물이 줄어드는 곳에 물 먹는 공장이 몰리니 새로운 물음이 뒤따른다. 한정된 물을 어디에 먼저 돌릴 것인가. 공장에 물을 대려고 새로 파는 우물과 설치하는 수도관의 비용은 누가 낼 것인가. 피닉스처럼 가정과 기업에 같은 수도요금을 적용하는 곳에서는 물값이 오르면 반도체 기업뿐 아니라 주민도 함께 부담해야 한다.
물을 다시 쓰는 기술이 반도체 기술만큼 중요해졌다
그렇다고 물 부족을 반도체 공장 탓으로만 돌리는 것도 사실과 맞지 않는다. 애리조나에서 물을 가장 많이 쓰는 분야는 농업으로, 전체 사용량의 70%를 넘는다. 반도체를 포함한 산업 부문은 약 6%에 그친다.
다만 농업용수는 줄이면서 첨단산업에는 물을 계속 공급한다면, 물 사용의 우선순위를 누가 어떤 기준으로 정할 것인지가 새로운 문제가 된다.
기업들도 대응에 나섰다. TSMC는 현재 애리조나 공장에서 사용한 물의 65%를 재활용하고 있으며, 물 재생시설이 완공되면 재활용률을 90% 이상으로 높이겠다고 밝혔다.
삼성 테일러 공장에 물을 공급하는 EPCOR도 공정용수의 75%를 회수하거나 재이용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나머지 물도 정화해 자연으로 돌려보낼 계획이다.
국내에서도 삼성전자는 화성·오산 지역에서 하루 12만 톤, 수원 지역에서 하루 21만 톤의 하수처리수를 정화해 반도체 공업용수로 쓰는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합하면 하루 33만 톤, 약 3억3천만 리터다. 삼성전자가 2025년 국내 사업장에서 다시 사용한 물도 약 1억800만 톤에 이른다(삼성전자 물 재이용 관련 보도).
물을 다시 쓰는 기술이 반도체를 만드는 기술만큼 중요해진 셈이다.
AI 경쟁을 이야기할 때는 당연하게 더 빠른 반도체와 더 큰 데이터센터, 기업이 쏟아붓는 투자액을 앞세운다. 그러나 반도체는 지도 위의 실제 장소에서 만들어진다. 그곳에는 예전부터 그 물을 마셔온 주민과 농사를 짓는 사람, 강에 기대 살아가는 뭇 생명이 있다.
이제는 “공장을 몇 개 짓느냐”만 물을 때가 아니다. 필요한 물을 어디에서 끌어오고, 얼마나 다시 쓰며, 그 비용과 부담을 누가 나눌 것인지까지 함께 물어야 한다.
Q&A
Q. 애리조나 물 부족의 주된 원인이 반도체 공장인가요?
아닙니다. 애리조나에서는 농업이 전체 물 사용량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반도체를 포함한 산업 부문은 약 6%입니다. 다만 물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반도체 공장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물을 어디에 먼저 공급할 것인지가 새로운 문제가 됐습니다.
Q. 초순수는 일반 수돗물과 무엇이 다른가요?
수돗물에 남아 있는 염분과 미네랄, 미생물과 미세입자까지 거의 모두 제거한 물입니다. 반도체 회로는 작은 불순물에도 손상될 수 있어 웨이퍼를 씻을 때 초순수를 사용합니다.
참고자료
• The Verge — Arizona’s lifeline for chip manufacturing is drying up
korec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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