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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이 결재했다는 청구서 — AI로 꾸민 미국의 가짜 이메일

korecult 읽는 시간 약 7분
임원을 사칭한 가짜 이메일과 청구서를 확인하는 회사의 대금 지급 담당자
AI는 임원의 지출 결재 내용과 거래업체의 청구서, 이전 이메일 대화까지 한꺼번에 꾸미는 데 이용될 수 있다. 자료 이미지=ChatGPT 생성

청구서와 거래명세서를 이메일로 받아본 사람이라면 남의 나라 이야기로 넘길 수 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거래처나 회사 임원을 사칭해 돈을 빼돌리는 이메일 사기가 AI를 만나 훨씬 빠르고 정교해졌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이미 비슷한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5년 상반기까지 은행 송금 과정에서 확인된 외환 무역사기는 1,591건이었다. 피해액은 약 1,330억 원에 이르렀다.

대표적인 수법은 거래처의 이메일을 해킹한 뒤 “대금 지급 계좌가 바뀌었다”고 속이는 것이다. 이를 믿고 새 계좌로 돈을 보내면 이미 늦는다. 해외로 빠져나간 돈을 되찾기는 매우 어렵다.

이번에 마이크로소프트가 발견한 사건은 미국 기업을 노렸다. 한국 기업은 보통 별도의 전자결재 체계로 지출을 승인하므로, 사장이 이메일로 직접 송금을 지시하는 장면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한국 독자가 이 사건을 알아야 할 까닭은 미국 회사의 결재방식 때문이 아니다. 거래처와 임원을 사칭하고, 가짜 청구서와 이전 대화까지 꾸며 의심을 없애는 수법은 한국에서도 그대로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사장이 결재했다’는 이메일이 왔다

미국 기업의 대금 지급 담당자에게 최고경영자가 보낸 것처럼 보이는 이메일이 도착했다. 거래업체에서 온 청구서에 따른 지출을 자신이 이미 결재했으니 약 5만 달러를 보내라는 내용이었다.

아래에는 업체의 로고와 항목별 금액이 적힌 청구서가 붙어 있었다. 번호와 발행일, 지급기한, 품목과 금액은 물론 청구받는 회사와 책임자의 이름까지 들어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회사의 최고경영자와 거래업체 대표가 구매와 설치, 비용처리를 논의한 듯한 이전 이메일까지 이어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실제 업무가 진행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최고경영자가 보낸 것처럼 보인 이메일도, 거래업체가 발행했다는 청구서도, 두 사람이 주고받았다는 이전 대화도 모두 가짜였다.

가짜 자료 세 개를 붙여 사흘 동안 100만 통을 보냈다

공격자들은 8월 3일부터 5일까지 사흘 동안 이런 이메일을 100만 통 넘게 보냈다. 여러 회사의 최고경영자·재무책임자·회장 이름을 알아낸 뒤 각 회사의 대금 지급 담당자에게 보냈다. 전체 이메일의 87.7%가 미국 기업을 향했다.

화면에 표시되는 발신자 이름과 서명에는 실제 임원의 이름을 넣었다. 청구서는 기업용 업무 프로그램을 판매하는 서비스나우가 발행한 것처럼 꾸몄다.

그러나 서비스나우의 전산망이 뚫린 것은 아니었다. 공격자가 실제 회사와 비슷한 인터넷주소를 만들고 그 회사의 이름과 로고를 가져다 쓴 것이다.

여기에 회사의 최고경영자와 서비스나우 대표가 이전부터 거래를 논의한 듯한 가짜 이메일 대화까지 붙였다. 담당자가 “우리가 이런 계약을 했던가”라고 의심할 가능성을 미리 계산한 구성이다.

최고경영자의 지출을 결재했다는 내용, 거래업체의 청구서, 두 사람이 나눈 이전 대화가 모두 같은 내용을 말하면 사실처럼 느껴진다. 여러 자료가 서로를 뒷받침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 자료를 모두 같은 공격자가 만들었다면 증거가 세 개가 아니다. 하나의 거짓말을 세 가지 모습으로 꾸민 것에 불과하다. 이번 사기가 노린 것도 바로 이런 사람의 판단방식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메일 양식을 만드는 데 생성형 AI가 쓰인 것으로 보이는 흔적도 발견했다. 문서 코드에 필요 이상으로 자세한 설명이 붙어 있었고, 구역 이름과 양식도 지나치게 일정했다. 대상 회사의 이름은 달랐지만 청구서 번호와 이야기 구조가 거의 같은 경우도 있었다.

다만 이것만으로 이메일 전체를 AI가 만들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마이크로소프트도 AI 사용과 일치하는 여러 흔적이 있다고 밝혔을 뿐, 어느 부분까지 AI가 만들었는지는 확정하지 않았다(마이크로소프트 보안연구팀 발표).

여러 흔적으로 볼 때 공격자는 AI의 도움을 받아 회사마다 다른 청구서와 대화를 짧은 시간에 대량으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는 계좌 변경 요구를 특히 조심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최고경영자가 지출을 결재했다는 이메일로 담당자를 속였다. 한국에서는 거래처가 대금 지급 계좌를 바꿨다는 이메일이 더 현실적인 위험이다.

두 수법의 공통점은 이메일 안에 있는 자료만으로 사실을 확인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발신자 이름과 청구서, 이전 대화까지 그럴듯하게 꾸며놓고 그 안에서만 판단하도록 재촉한다.

가짜 이메일에도 이상한 점은 남아 있었다. 화면에 표시된 임원 이름과 실제 발신 주소가 달랐고, 거래업체를 흉내 낸 인터넷주소에는 불필요한 글자가 붙어 있었다. 이전에 주고받았다는 이메일에는 정상적인 발신정보도 없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런 실수가 줄어들 수 있다. AI가 문장과 서류 양식을 계속 다듬으면 사람이 눈으로 가려내기는 더 어려워진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송금을 요구한 이메일에 그대로 회신하지 않는 것이다. 회신 주소까지 범인의 것으로 바뀌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평소 알고 있던 전화번호로 거래처에 직접 연락하거나 회사 내부 결재기록을 확인해야 한다.

처음 보는 계좌로 돈을 보내라고 하거나 기존 거래처의 계좌가 바뀌었다면 더욱 조심해야 한다. 금액이 크지 않더라도 한 사람이 확인하고 바로 보내는 방식은 피해야 한다.

AI는 임원의 말투와 거래업체의 청구서, 이전 대화까지 흉내 낼 수 있다. 그러나 이메일 밖에서 이루어지는 전화 확인과 회사 내부의 결재기록까지 한꺼번에 조작하기는 어렵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가짜 이메일을 한눈에 알아보는 특별한 눈썰미가 아니다. 급하다는 말에도 정해진 확인절차를 건너뛰지 않는 습관이다.

Q&A

Q1. 발신자 이름이 사장이나 거래처로 표시되면 믿어도 되나요?
화면에 보이는 이름은 쉽게 바꿀 수 있습니다. 발신 주소와 회신 주소가 실제 회사 주소와 같은지 확인해야 합니다. 주소에 글자가 하나 더 붙거나 철자가 조금 달라진 경우도 주의해야 합니다.

Q2. 거래처에서 입금계좌가 바뀌었다고 하면 어떻게 확인해야 하나요?
받은 이메일에 그대로 회신하지 말고, 평소 사용하던 전화번호로 거래처에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 회사 내부의 결재기록을 살피고 두 사람 이상이 확인한 뒤 송금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참고자료

korecult

korecult
금속공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Operations Management 석사학위를 받았다. 발명가와 사업가로 활동하며 기술·생산·경영 현장을 경험했으며, 한국정신과학학회 창립에 참여해 총무이사와 부회장을 역임했다. 이후 한국사와 동양사의 기존 해석을 사료와 여러 관련 자료에 근거해 재검토하는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지식창고에서는 이러한 공학·경영 경험과 연구자의 관점을 바탕으로 AI와 정보기술 관련 자료를 검토하고, 일반 독자가 이해하기 쉬운 글로 전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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